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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어린이식단

부담없는 집밥부터 도전해보기 (유아식단 포함)

어려서부터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대한민국 k-장녀성향의 사람이었습니다. 동생 5살 저 8살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으로 인해서, 동생을 늘 챙겨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유치원생 동생의 머리를 묶어서 8살인 저는 피아노 학원에 보내기도하고요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간식을 사주러 분식집에 동생과 함께 줄을 서기도하였답니다. 초등학생 때에는 요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거든요. 그렇게 동생을 보호해주면서 자랐습니다. 커서도 월급을 받으면 엄마아빠보다는 동생에게 용돈을 주거나 먹고 싶은 것을 사주는 그런 언니였던 것 같아요. 그만큼 첫째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님께 혜택을 받아서 동생에게는 미안한 감정이 컸었습니다. 그리..
어려서부터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대한민국 k-장녀성향의 사람이었습니다.

동생 5살 저 8살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으로 인해서, 동생을 늘 챙겨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유치원생 동생의 머리를 묶어서 8살인 저는 피아노 학원에 보내기도하고요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간식을 사주러 분식집에 동생과 함께 줄을 서기도하였답니다. 초등학생 때에는 요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거든요. 그렇게 동생을 보호해주면서 자랐습니다.

커서도 월급을 받으면 엄마아빠보다는 동생에게 용돈을 주거나 먹고 싶은 것을 사주는 그런 언니였던 것 같아요. 그만큼 첫째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님께 혜택을 받아서 동생에게는 미안한 감정이 컸었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훌쩍 키도 저보다 커버린 한아이의 엄마인 동생이 제 눈엔 아직도

너무 예쁘답니다. 어렸을 때 동생 친구들이 동생을 부러워했었어요. 제가 예뻐해주니깐요.


성인이 되어서는 회사를 다니면서 제과제빵을 배울 때는 대용량으로 빵을 만들다보니 양이 많아지면 그 다음날 회사에 가져가서 나눔을 하기도 했고요.
그 빵을 회사 분들은 기다리시고, 저는 나눠 드리면서 저는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를 할 때에는 아이들에게 쿠키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고,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하여서 간단한 음식을 해주면서 보람을 느꼈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행이 아이는 저희가 원하는 시기에 한 번에 생겼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저는 임신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아이를 낳기 전
꼬박 10개월이라는 시간을 입덧으로 참으로 힘든 순간을 보냈습니다.

구토를 10개월 한다는 것은 감히 제 임신계획에 상상도 없었던 일이었어요.

제 주위에서도 10개월 입덧한 사람은 보지 못했거든요.


그 시기 저는 2년 단위의 계약직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4월에 임신을 하게 되었고 8월이면 재계약 시기가 다가 왔습니다.


하지만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재계약을 할 수없을것만 같은 생각에
입덧을 하면서 임신전과 같은 옷차림과 높은 구두를 신고 출근을 하였습니다.
그 시기가 지금 생각하면 조금 슬프기는 합니다.


그러다가 회사 체육대회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임신사실을 고백했을 때에는 허무하기도 속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난 여기서 이제 끝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게 현실이니깐요.


그때부터는 아주 편한 옷차림으로 회사를 다녔습니다. 8월 계약이 끝나는 순간까지요. 제가 재계약된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깐요 . 제가 입덧을 하는 것을 같은 팀 사람들은
웬만해선 알았으니깐요.


먹으면 토하고 먹으면 토하고, 회사에 있는 동안 좀비처럼 다녔습니다.
몸무게는 임신 전보다 보다 4~5kg 덜 나갔습니다.
미혼인 여자 동료들은 언니를 보니까 임신하는 게 무섭다고 할 정도였어요.


저 역시도 늘 먹고 토하기 때문에 음식을 먹는데 돈이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식당이나 새로운 곳에 가면 화장실 위치부터 확인하는 게 저의 임무였거든요.
직장 상사께서 편의를 봐주셔서 중간에 조퇴 한 적도 몇 번 있었고요.
울면서 집에간 기억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아이를 잘 낳았고 생각보다 아이는 순하게 잘 자랐습니다.



저는 생각해보니 아침에 일어나 회사를 다니는 것 자체가 보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예쁜 블라우스와 치마 그리고 구두를 신고 회사를 다니면서 제 자존감이 올라갔었는데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순간 제 자존감은 바닥이더라고요.


살은 찌고 좋았던 나름 피부에 자신 있었던 제 얼굴은 기미가 올라오고 , 몸무게도 아이 낳기 전보다 무거워지니 슬퍼졌습니다. 아기 띠를 하고 걷는 저의 모습에 자신감이 없었어요. (제가 꼭 캥거루 갔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리고 독박육아로 누군가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제가 살던 곳이 아닌 곳에서 적응하는 게 시간이 오래걸렸습니다.

양가 부모님은 일하시고 계셔서 도움 받을 수도 없었고 남편은 비록 일찍 집에 오지만 무뚝뚝한 성격과, 본인도 처음 겪는 육아에 우리부부는 날카로워져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기 십상이었어요.

매일 울고 싸우고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더욱더 무너져 가는 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육아를 하다보면 힘들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남편에게 듣고 싶었지만, 무뚝뚝하고 말주변없는 성격에 저는 더 외로웠던 것같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야할 시점에,어린이집에서 주는 것처럼 밥을 주고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식단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리고 아이가 생일은 빠르지만 몸무게도 키도 평균이 아니어서 더 식단에 신경 쓰게 되었답니다

그렇다고 저희 아이가 지금은 우량아가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냥 엄마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만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누군가 보여주려고 하는 마음이 아닌 아이에게 겹치지 않은 음식을 주고 싶은 마음에 저만의 저장용 사진이었지만 우연히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생각에 블로그에도 글을 남기기 시작하였고 이렇게 많이 부족하지만 전차책을 쓰려고 이렇게 새로운 시작을 하기위해 도전중이랍니다.

한번뿐인 내 인생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 그리고 조금 더 멋진 엄마와 아내로 후회하고 싶지 싶어서 이제라도 시작하려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합니다.


상황을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상황을 만든다.
- 존 우든-
비록 처음이라 부족하고 아직 채워야할게 많지만 조금씩 제 안에 있는 알을 깨보고 나아가려합니다.
안녕하세요 꾸준히 아이식단을 해주고 있는 핑크몰링입니다
어떻게하면 아이 식단 및 집밥을 부담없이 잘 하면 좋을지 그 고민을 덜어주고싶은 마음에서 전자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엄마들의 고민 함께 나누며 저도 함께 성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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